드 클레랑보 신드롬를 소재로 이언 매큐언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신뢰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여기의 사건과 이 신드롬은 실재하는 것일까?)그는 독자에게 그냥 툭 던지지 않는다. 아주 정성 들여 다듬은 질문이다. 단어를 애써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전체적인 구성을 공들여 꾸며내며 만든 질문이다.
조와 클라리나의 관계를 어정쩡한 상태로 끝맺으면서 이 질문은 현실적인 것이 되고,
그래서 결국 질문은 난해한 것이 되고 만다(‘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난해한 것인지 모른다).
소설은 “시작점을 짚어 내는 건 쉽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그 시작점은 무척이나 자의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만다.
모든 상황에는 원인이 있지만, 그 원인을 짚어내는 것은 사람마다 주관적이다.
몇 주 전 비가 몹시 오던 날, 내가 출근길에 미끄러져 손이 까였다. 그 원인을 뭐라 할까? 바로 넘어지기 바로 직전의 부주의? 지하철까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한 결심? 아니 굳이 출근하지
않았어도 됨에도 출근하기로 마음먹은 선택? 혹은 한반도에 기상 상황을 만들어낸 어떤 한 나비의 날개짓?
시작점을 짚어 내는 게 쉬운 것은 누구도 그 시작점을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소설의 시작점은 헬륨 풍선 사건이었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조와 클라리사 사이의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무척 사랑하지만, 그건 어쩌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의무, 혹은 다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사랑한다고 믿는 것인지도 모른다.언젠가는 서로를 못미더워하거나, 상대를 절실히 원할 때 그에 관해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은 올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르는 것이다.
운명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핑계를 대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무엇이든 핑계가 될 수 있으니까.
그것을 인정하거나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다투고, 갈라서거나 화해한다.
사랑을 화학물질, 즉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보면, 그 호르몬이 역할을 다한 후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 ‘의리’가 아니라 ‘견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의 원제가 바로 “Enduring
Love”다.)
이 밖에 이 소설을 읽는 재미로 덧붙이자면, 진화생물학, 심리학, 양자역학과 같은 과학 얘기가 꽤 전문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시 평론가이자 대학 교수인 클라리사는 시인 키츠 전문가인데, 키츠
얘기는 별로 흥미가 가지 않는다. 당연히!). 조가 바로
과학 칼럼니스트여서 그런데, 이언 매큐언의 다른 소설에서처럼 그는 무척 꼼꼼하게 관련 분야를 조사하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박학하다.
우리가 가장 큰 정신적 가치를 부여하는 사랑과 가장 큰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도덕성을 파헤친 소설 이런 사랑 . 속죄 와 더불어 이언 매큐언 2대 걸작으로 손꼽히며,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으로 선정되었으며 2004년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우리에게 친숙하고 가치 있는 경험인 사랑을 하나의 병리 현상으로 보고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충격과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충격적 사고 현장에서 한순간 조와 사랑에 빠져버린 기독교 광신도 패리의 사랑은 죽어야 끝나는 사랑,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라는 병이다. 반면 과학저술가인 조에겐 사랑도 진화의 결과, 생물학의 일부로 인식된다. 한편, 키츠를 연구하는 영문학자 클라리사에게 사랑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가치를 가진 존재다. 이언 매큐언은 세 가지 종류의 사랑을 거장의 솜씨로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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