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풀밭 양탄자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잔디밭 갖고 싶어 봄부터 좁은 마당에 물을 뿌리고 풀을 뽑았다 모처럼 애써 가꾸었지만 심지도 않은 토끼풀 강아지풀 쐐기풀 저절로 돋아나고 아무리 뽑아버려도 개비름 까치밥 쇠뜨기 엉겅퀴 자꾸만 자라나고 디딤돌 옆에는 억새풀 질경이까지 퍼져 차라리 잡초를 기를까 내버려두었다 (이제 잔디는 모두 죽고 잡초만 무성하게 번지겠다) 그러나 한여름 접어들자 잔디와 잡풀이 한데 어울려 길고 짧은 잎들이 들쭉날쭉 울긋불긋한 꽃들 멋대로 피어나 벌과 나비 날아들고 메뚜기와 방아깨비 뛰노는 짙푸른 풀밭이 되었다 - 김광규, 풀밭 양탄자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잔디밭을 갖고 싶은 생각에 시인은 봄부터 좁은 마당에 물을 뿌리고 풀을 뽑았다. 잔디가 아닌 풀을 족족 뽑아버리면 아름다운 잔디밭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틈이 날 때마다 풀을 뽑고 물을 주며 잔디를 가꾸었지만, 심지도 않은 토끼풀과 강아지풀과 쐐기풀이 저절로 돋아났다. 제멋대로 자란 풀들이 미워 시인은 거침없이 그것들을 뽑아냈다. 기다렸다는 듯 개비름과 까치밥과 쇠뜨기와 엉겅퀴가 자꾸만 자라났다. 디딤돌 옆에는 억새풀과 질경이까지 돋아나 잔디밭은 사라지고 어느새 잡풀이 자라나는 풀밭이 되어버렸다. 이러려고 봄이 오자마자 물을 뿌리고 풀을 뽑는 노동을 했단 말인가. 시인은 어이가 없다. 이제 잔디는 모두 죽고 잡초만 무성한 마당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간다. 마음을 접고 저들이 자라는 대로 그냥 놔둬버린다. 시간은 흘러 한여름으로 접어들었다. 뽑지 않은 잡풀들은 여기저기서 들쭉날쭉 길고 짧은 잎들을 피워냈다. 잡풀로 뒤덮인 마당이 되어버렸느냐고? 언뜻 보면 그렇기도 하다. 매끄러운 잔디밭을 원했던 눈으로 보면, 좁은 마당은 온통 잡풀로 뒤덮인 거친 세상이 된 셈이니까. 그런데, 다르게 보면 잡풀 사이사이로 끈덕지게 살아남은 잔디들이 쑥쑥 솟았다. 잔디는 잔디대로 살아났고, 잡풀은 잡풀대로 살아났다. “잔디와 잡풀이 한데” 어울린 마당은 멋대로 피어난 울긋불긋한 꽃들로 화사하게 새 단장을 했다. 머릿속으로 그린 아름다운 잔디밭을 떨어내고, 시인은 잡풀들이 피워낸 또 다른 세상에 한없이 매료된다. 잔디밭이 단조로운 색감을 띤다면, 잡풀들이 피운 꽃들은 저마다 다채로운 색감을 펼쳐낸다. 잡풀들은 저 꽃들을 피워내기 위해 그리도 질긴 생명력을 내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날아든다. 잔디밭에 벌과 나비가 날아들던가? 잔디밭 새에 잡풀이라도 떨어질라치면 사람들은 서슴없이 풀을 뽑아 내팽개친다. 잔디밭을 가꾸려면 그래서 손이 많이 간다. 시인처럼 좁은 마당에 잔디를 심어도 마찬가지다. 땅이란 끊임없이 생명을 피워내는 장소가 아니던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잔디밭을 유지하려면, 땅 속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잡풀들을 계속해서 솎아내야 한다. 오로지 잔디만이 푸르게 펼쳐진 세상은 이리 보면 자연이 아니라 인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드넓은 골프장을 푸르게 물들인 잔디를 떠올려 보라. 부잣집 앞마당을 푸르게 물들인 잔디밭을 생각해도 좋다. 푸르고 푸른 잔디밭을 유지하기 위해 그곳에 깃드는 다른 생명들은 대부분 없애야 한다.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으면 잔디밭은 절대로 유지될 수 없는 ‘문명’에 해당되는 것이다. 문명은 야생 잡풀이 뚫고 들어올 틈을 자꾸만 막으려고 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은 왜 점점 파괴되겠는가? 문명은 잔디밭처럼 단조로운 세계를 원한다. 그만큼 관리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야생 상태로 놔두면 자연은 잡풀처럼 들쭉날쭉 울긋불긋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운다. 잔디가 피어날 자리를 잡풀이 갉아먹는다.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뛰노는 자연이 참 아름답지 않느냐고?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리가 되지 않는 야생=자연은 곳곳에 구멍을 뚫어 문명을 서서히 좀먹어 들어올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자연이 아니라 문명을 우위에 놓는다. 자연 속 인간을 생각하기보다 문명 속 인간을 먼저 생각한단 말이다. “메뚜기와 방아깨비 뛰노는/ 짙푸른 풀밭”에서 문명의 이기들이 베푸는 풍요로운 삶을 어떻게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아름다운 잔디밭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벌과 나비 날아들고, 메뚜기와 방아깨비 뛰노는 짙푸른 풀밭을 포기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짙푸른 풀밭은 잔디밭을 갖고 싶은 마음으로 이를 수 없는 곳에 있다. 사람들 손길이 자주 미치는 곳에서는 잡풀이 자라날 수 없다. 잡풀은 사람들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야 비로소 제 숨통을 틀 수 있다. 잡풀이 숨통을 트면 벌과 나비도 숨통을 트고, 메뚜기와 방아깨비도 숨통을 튼다. 잔디가 숨통을 튼 곳은 어떨까? 잡풀은 한없이 숨을 죽여야 하고, 벌과 나비와 메뚜기와 방아깨비도 숨을 죽여야 한다. 하나를 위해 다른 수많은 것들을 희생하는 인간의 문명이 ‘잔디’라는 사물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지 않은가. 짙푸른 풀밭에는 문명이 자꾸만 외면하려고 하는 온갖 생명들이 살고 있다. 잔디와 잡풀이 한데 어우러진 (좁은) 마당은 이 문명사회에서는 불가능하기만 한 꿈인 것일까 2. 떠남 아무도 오라고 하지 않고 가라고 하지 않을 때 처음으로 나는 혼자서 떠났다 오랫동안 정든 곳을 떠나 낯선 곳에 머물다가 처음으로 나는 돌아왔다 반갑게 맞아주고 따뜻하게 보살펴주어 편안히 한동안 머물다가 나는 다시 떠났다 모두들 말리면서 못 가게 했지만 고집스럽게 뿌리치고 다시 떠났다 어느 곳이든 가서 머물다가 익숙할 때쯤 그곳을 떠났다 때로는 붙잡고 못 떠나게 해서 차라리 그대로 머물까 망설이다가 기어코 또 떠났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떠나고 다시 돌아왔다 즐거운 집 사랑스런 가족을 두고 이제 또 떠나야겠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라도 - 김광규, 「떠나기」 익숙한 곳을 떠나는 일은 자기를 바꾸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낯선 곳으로 가면 누가 시인을 반겨줄까? 아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게 아니다.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시인은 떠나려고 한다. 익숙한 곳에서는 익숙한 사람만 보일 뿐이다. 자기도 익숙하고, 타자도 익숙하다. 몸이 아프면 주변에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낯선 곳에서는 달라진다. 몸이 아파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하소연할 사람을 찾기도 힘들다. 길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면 누구나 고생을 한다. 그럼에도 시인은 “아무도 오라고 하지 않고/ 가라고 하지 않을 때” 과감하게 혼자서 길을 떠난다. 이리 길을 떠나는 건 처음이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온갖 것들이 처음으로 길을 떠난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시인이 오랫동안 정든 곳을 떠나 머문 낯선 곳에서 일어난 일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처음으로 나는 돌아왔다”는 말로 떠남과 돌아옴에 새겨진 일상을 표현하고 있다. 처음으로 길을 떠난 사람은 처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침이면 집을 떠나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일상이 아니다. 처음으로 길을 떠나는 순간 시인은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 들어서고, 처음으로 집에 돌아온 순간 시인은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익숙한 공간과 마주한다. 집을 지킨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따뜻하게 보살펴주어” 시인은 그곳에서 한동안 머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다. “나는 다시 떠났다”라는 시구에 드러난 대로, 시인이 집에 돌아온 이유는 다시 한 번 길을 떠나기 위해서이다. 이제 더 이상 시인은 한 집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 집을 떠난 이에게 집은 스쳐 지나는 바람과 같다. 떠나려는 시인을 모두들 말린다. “못 가게 했지만/ 고집스럽게 뿌리치고” 시인은 길을 떠난다. 사람들은 익숙한 곳을 떠나려는 시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익숙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가. 그 시간이 아깝지도 않단 말인가. 편안한 집을 떠난 시인은 어느 곳이든 가서 머물다가, 익숙해지면 다시 그곳을 떠난다. 익숙함을 얻기 위해 시간을 투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환장할 일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리도 방랑을 한다는 말인가. 스무 살 청춘도 아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중년의 나이에, 한 곳에 듬직이 앉아 자기를 드러내야 할 나이에 시인은 아무런 멍에도 짊어지기 싫다는 듯 길을 떠난다. 때로는 시인도 붙잡는 사람들의 손을 쥐고 그대로 한 곳에 머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낯선 길이다. 낯선 공간보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시인이 어찌 모를 것인가 그런데도 시인은 “기어코 또 떠났다”. ‘기어코’라는 시구에 눈이 꽂힌다. 이런저런 상황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시인은 기어코 길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 선택을 했고, 그래서 끊임없이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어디를 가나 ‘집’이 있으므로, 처음으로 떠난 집을 단 한 곳의 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집을 떠나는 순간 시인은 온 세상이 집인 그런 세계와 마주한다. 물론 가족들은 시인의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들은 여전히 하나의 집, 곧 익숙한 집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떠나려는 사람을 붙드는 이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머무는 길을 선택했고, 시인은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칼로 과일을 자르듯이 판단할 수는 없다. 선택도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고, 판단도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떠나는 날이 곧 마지막이 되는 날도 오기 마련이다. “즐거운 집 사랑스런 가족”을 온몸으로 품은 사람들도 마지막이 되는 이 날을 피할 수 없다. 떠나고 싶지 않다고 버텨도 운명은 어김없이 그(녀)를 길 위의 방랑자로 만든다. 시인은 그러니까 그들보다 조금 일찍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 또 떠나야겠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라도”라는 결구가 뒤를 따른다. 다시 돌아오는 길을 얘기했지만, 사실 다시 돌아오는 길은 있을 수 없다. 모든 곳이 집인 사람은 떠나는 순간 돌아오는 기쁨을 맛보기 때문이다. 일상에 매인 사람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순간을 공포로 맞이하겠지만, 모든 곳이 집인 시인은 떠남과 돌아옴을 통해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기쁨에 이른다. 돌아오기 위해 집을 떠난 시인은 지금 이 순간 돌아올 수 없을지라도 집을 떠나려고 한다. 그게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김광규 시인의 은 1970년대 이래 우리 현대시의 새로운 흐름을 이루고 있는 일상시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 감나무 바라고기
때 / 감나무 바라보기 / 누가 온 세상을 / 비맞이 / 풀밭 / 하얀 비둘기 / 빨랫말미 / 달팽이의 사랑 / 잠자리 / 무우 / 성산동 가랑잎 / 대추나무 / 나뭇잎 하나 / 가을날
2. 대장간의 유혹
그날 3 / 그날 4 / 귀향 / 6월이면 / 그때는 걸어서 다녔다 / 여름에는 창문을 / 밤눈 / 나무 / 20세기 / O 회장 / 그런 사람 / ㅂ씨 / 절약가 / 봉순이 엄마 / 남인 / 뺄셈 / 연금일지 / 독립문 역 / 좀팽이처럼 / 대장간의 유혹
3. 지금 여기서
얼굴 / 그날 1 / 그날 2 / 일년 / 전쟁놀이 / 여름살이 / 우리의 강물 / 재수좋은 날 / 그날 5 / 마감 뉴스 / 얹까지 도대체 언제까지 / 부끄러운 월요일 / 옛 교정 / 파리떼 / 지금 여기서 / 아빠가 남긴 글 / 나사에 관하여 / 당신들의 용벙 / 간단한 부탁 / 작은 꽃들 / 동서남부
4. 어른의 길
천안 근처 / 어린 거북이 / 용의 모습으로 / 어른의 길 / 한강
5. 구리거울
산개구리 / 흐린 날 / 구리거울 / 대웅전 뒤쪽 / 누가 부르는지 자꾸만 / 이산의 꿈 / 문 앞에서 / 어떤 죽음의 회고 / 떠나기
해설 : 평상심의 맑은 정신과 눈
내가 쓰고 그린 책
내가 쓰고 그린 책솔직히 옆에서 슬쩍 보기는 했는데, 내용이 이해가 잘 안되는 도서다.그런데도 아이는 깔깔 대면서 이 책을 여러번 읽고 있다.그림을 그리는 주인공과 책속의 주인공이 마치 서로의 감정을 교환하는 듯한 스토리다.마치 실제로 색연필을 쓱쓱 문질러 가면서 좀 거친 종이에 실제로 그림을 그린듯 한 느낌을 주고 있다.초등 3-4학년 정도 아이에게 주면 좋아할 만한 도서같다.내 감정과 생각을 쓰고 그리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아이들의 이야기
rthdf.tistory.com
영어 동요
영어 동요ㅋㅋ 그림 정말 귀엽고 창의적이에요... 꼬마가 매일 같이 테디베어만 눌러대서 고장 안날련지 ..- - 동일작가 그림이 더 보고 싶어지네요.....동화 밑 버튼을 누르면 그림에 어울리는 영어동요가 흘러나와요! 영유아들에게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영어를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어동요에요. 책밑에 붙어있는 버튼을 누르면 페이지에 적힌 가사로 영어동요가 흘러나와요. 부모님이 아이를 안고 함께 불러주시면 더욱 효과적일 거에요. 이 시기의 아이들은 청각
ghes.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