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글은 좀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수업을 하다 보면 시를 만날 때도 있고 소설을 만날때도 있다. 이번에는 수필이다. 짧은 생애 다양한 글을 많이 썼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글 중에 난해한 작품이 더러 있으니 평가도 다양하다. 뛰어난 작가라는 사람도 있고 형편없다는 사람도 있고. 나는, 음, 이상이 글을 잘 쓴 사람이라고 말하는 쪽에 있다고 해야겠다. 팬 정도는 되리라.
이 수필집에 있는 권태 는 대학 3학년 때 처음 본 글이다. 그때 나름 인상적이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다. 이렇게 기억을 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권태 는 참으로 권태로운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읽는 내내 더없이 권태로움을 느낄 정도로, 글만으로도 충분히 권태에 짓눌릴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극히 평온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한없는 권태로움을 견디고 있는 것처럼 읽히는데 이 글이 동경에서 기억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의 신선한 충격. 아, 작가란, 작가의 상상력이란, 이렇게 발휘되는구나 싶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쓰는 능력, 아무래도 고개가 절래절래.
산촌여정도 비슷하다. 평안북도 어느 산촌을 배경으로 하는 듯. 묘사가 상당히매력적이다. 물론 쓰인 영어 단어나 한자어가 그의 잘난 척하는 일면을 보여 주는 듯도 싶지만, 그것조차 나는 거슬리지 않는다. 그 시대, 1930년대 후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지도 모를 일이니까. 알만한 사람이, 알만한 상황에서,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자신의 생을 죽여 나가는 시절이었을 테니, 나는 그의 마지막을 염두에 두면 그저 안타까움밖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얼마나 살아 있는 게 힘들었을까.
이상의 산문집을 이제라도 구해 두게 되어 퍽 만족스럽다.
이상의 글쓰기는 한국 근대문학에 분명 하나의 충격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충격은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양식에 대한 반동에서 온다. 경험의 절대적인 존재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문학에서는 조각이나 부분이 전체를 대신하며, 한정되어 있는 전체보다는 단절되어 있는 부분과 부러진 조각에서 어떤 의미를 느낀다. 이상 문학에서 어떤 해답을 찾으려 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오히려 우리에게는 그가 고뇌하며 질문했던 문제들을 다시 재질문하는 자세로 읽는 이상의 산문선이다.
- 태학산문선을 발간하며
- 이상의 글쓰기, 그리고 근대성의 극복 문제
[1] 제1부
1. 산촌여정
2. 권태
[2] 제2부
1. 보험 없는 화재
2. 단지한 처녀
3. 차생윤회
4. 공지
5. 도회의 인심
6. 골동벽
7. 동심행렬
8. 서망율도
9. 여상
10. 추석삽화
11. 구경
12. 예의
13. 기여
14. 실수
15. 행복
16. 약수
17. EPIGRAM
18. 19세기식
19. 동생 옥희 보아라
[3] 제3부
1. 슬픈 이야기
2. 병상 이후
3.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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